이 준 Lee June

방관자(Bystander)

‘Bystander Effect’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은 미국의 한 여성의 살해 사건 후였다. 1964년 뉴욕에 사는 키티는 집 앞에서 살해 당했다. 그녀가 살해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무려 38명에 달했다. 그러나 그녀가 칼에 찔리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아무도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구급차를 부르거나 살해범을 저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38명의 목격자들은 한사람이 큰 위험에 처해 목숨이 위태로움에도 불구하고 모두 방관만 하고 있었다. 당시 이사건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사건은 비단 당시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현재도 방관자들은 곳곳에서 발견 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중의 하나가 학교 폭력이다. “왕따”라고 불리는 한 학생을 다수가 괴롭히는, 짓궂은 장난이 아닌 정말 괴롭힘이다. 학생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한 학생을 가학적으로 때리고, 정신적으로 괴롭혀 결국 피해 학생들이 극단적으로 삶의 마감을 선택하거나, 크나큰 정신적 피해를 입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일이 버젓이 교실에서 일어나도, 제3자였던 다른 학생들이나 교사들은 방관자적 태로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체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을뿐, 방관자들은 사회 곳곳에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나조차도 방관자일수 있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어른이나 아이 누구에도 국한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방관하면서 사회적 외톨이를 만들고 심각한 사태로까지 치닫게 하고 있다. 팔짱을 끼고 먼 곳에서 구경하듯 바라보고, 뒷짐을 지고 남의 일인 냥 바라보는 방관자들, 언젠가 내가 저 한가운데에서 방관자들에 의해 사회적 외톨이가 되고, 제2의 키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침묵으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속에서 개인이 외톨이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묵인하는 다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작업에서 나는 작은 인체들을 만든다. 그 인체들은 두가지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하나는 팔짱을 낀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뒷짐을 진 모습이다. 이 두 모습 모두 방관자를 표현한다. 팔짱을 끼고, 두손을 감추어 마치 “나는 당신을 도와줄 손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과, 뒷짐을 지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나는 이 일과 관련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모습을 나타내려 하였다. 인체들은 24cm정도로 인형처럼 작은 크기이다. 마치 큰 건물을 한 눈에 볼 수 없어 작은 크기로 줄여 만든 건축 모형을 보고 건물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있게 되듯 나는 실제 사람의 크기보다 훨씬 더 작은 인체상을 만들어 한눈에 사회적 외톨이를 어떻게 다수가 외면하고 있는지 보려 한다. 실이라는 재료를 통하여 각각의 방관자들을 모두 다른 실(질감,두께,색)로 감았고, 또한 패턴 모양 역시 각각 고유한 것으로 다르게 만들었다. 인간이 대부분 같은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성격과 DNA가 다르듯, 인체 모양의 인형들은 감싸여진 실을 통해 고유의 지문과 같은 인간성을 부여 받게 된다.

인간의 무게(Weight of Human)

이번 작업에서 내가 표현하는 인간의 무게는 실제적인 체중이 아닌 개인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이다. 인간은 깃털같은 짐을 들고 태어나 자라면서 사회관계를 맺고, 자리를 유지하며 스스로를 확장시켜 나간다. 그렇게 사회적인 존재가 되어가면서 조금씩 자신이 짊어진 무게가 늘어간다. 나는 사회속에서 개인이 직면하는 책임감, 중압감, 스트레스등 개인이 사회에서 느끼고 갖게되는 사회적이 심리적인 보이지 않는 무게를 표현한다.

무게가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이 살면서 자신이 감당 할 수 있는 무게를 짊어지게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 이 무게는 주관적이라 타인과 비교하기도 힘들고 바꿔 들기도 어렵다. 또한 내가 들기 싫다 하여 타인에게 모조리 떠맡기고 혼자 가벼워 질 수도 없다. 더불어 앞선 의욕과 허풍으로 더 많은 짐을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가기도 어렵다.

동양에서 “업”이라는 단어가 있다. 업이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인식하게 하면서 스스로를 의식하고 반성하며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게 하는 가르침이다. 이는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거나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동양의 사상이다. 자신이 만들어 가는 업의 크기, 개인이 생각하고 느끼는 삶에 따라서 개인이 느끼는 삶의 무게는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은 보다 편리해졌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정신적인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양은 많이 증가되었다. 나는 이번 작업에서 현대인의 커져만 가는 무게를 표현하고자 한다.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소품들, 누군가의 직업을 나타내는 도구들, 개인이 가지는 위치나 자리를 표현하는 여러 미니어처 오브제들을 다양한 인체에 엉겨 붙임으로써 현대 사회 속의 개인이 마주하고 짊어진 커다란 삶의 무게를 표현한다.

방관자/Bystander | Thread on plastic cast, 2011-현재 | 24X5X4cm
인간의 무게/Weight of Human | Thread on resin cast and clay, 2018 | 59X23X20cm
인간의 무게/Weight of Human | Thread on resin cast and clay, 2018 | 60X34X32cm
인간의 무게/Weight of Human | Thread on resin cast and clay, 2018 | 34X36X40cm
Maki Chair 2 | Thread and leather on chair, 2018 | 35X45X85cm
Nike 콜라보 | Thread on shose, 2018
Untitled | Thread on ceramic jar, 2021 | 17x17x14
Untitled | Thread on ceramic jar, 2021 | 10x10x9
Untitled | Thread on ceramic jar, 2021 | 10x10x9

참고 이미지

Animal Mirror (1)
Animal Mirror (2)
Bias, 2015, Mixed Media, 13 x 9 x 8.5” each
Maki Chair (1)
Maki Chair (2)
Maki Stool (1)
Maki Stool (2)
Weight of Human (4)
Weight of Human (10)
Weight of Human (15)
Witness(and there were none),2013, Mixed Media, 30 x 20 x 24 cm each h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