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분적인 연결들 >

<부분적인 연결들>

이 전시의 중심부에는 고정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것이 없다.
7명의 작가들이 모였고, 작품을 내놓았다. 같이 이야기할 만한 하나의 문제나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를 중심에 놓지 않기로 했다. 하나에 초점을 맞추려면 각 작품이 갖고 있는 수많은 의미 등 버려지는 것들이 생긴다. 그냥 이대로 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고자 한다. 더 작고 작은 혹은 더 크고 큰 조각들 속에서 그 사이를 서로가 어떻게 횡단하고 그것들이 자체적으로 복제되거나 증식하게 되는지 두고 보기로 한다. 분석이나 해석에서는 떨어져 나와 있다. 오히려 대조 분석하거나 체계화될 수 없는 것들이 무작위적으로 모였을 때 내적 이질성을 통해 어떤 연결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통합되지 않는 것을 말함으로써, 차라리 흩어짐을 말함으로써 또 다른 특정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의 정면을 바라보다가 각도를 조금 틀었을 때 떠다니던 기억의 파편들<기준의 반경>이 을 뚫고 지나가거나 돌아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구리와 동을 번갈아 엮어 만든 가늘고 긴 조각을 묵직한 돌과 석고 앞에서 권태롭고 절망스러운 의 시간을 보낸 이의 손에 쥐어준다면 어떨까. 적극적으로 자기를 파괴하는 는 <판게아의 기억>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이 둘은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지 않을까. <기준의 반경>의 움직이며 흐려지는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일제히>의 고정되고 선명한 이미지는 어떤 식으로 발생 중인가. 발생하여 어디에 자리를 잡을까. 가 덜어내려는 양감은 에 전달될 수 있을까.

질문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전시에서 말하는 부분은 전체의 일부가 아니다.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질수록 전체와의 관계를 논할 필요가 없는 부분들 그 자체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아무 지점, 어느 요소에서든지 제멋대로 출발하고,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부분 그 자체를 들여다보고 질문을 또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

부분적인 연결들은 인류학자 메릴린 스트랜선의 책 제목이다. 전체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오로지 부분적인 연결들을 어떻게 하면 지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의 방식을 따라가보고자 하였다.

■박지나